오늘처럼 달이 유난히도 크고 꽉 차올랐던 밤이라 기억된다. 어린 내 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잔뜩 수그려있고, 내 등 위로 누군가가 날 감쌌다. 또 그 위를 널찍한 덩치로 두 팔 벌려 날카로운 무언가로부터 보호하던 누군가가 있었다.
쫙~! 쫙! 착~! 착!
기분 나쁜 소리가 쉴 틈 없이 계속 이어졌다.
“도망가! 둘이 먼저, 어서!”
한 목소리가 거친 숨소리와 맞물려 귓가에 들려왔다. 다음 순간 내 몸은 일으켜 세워졌고 어떠한 손에 이끌려서 달리게 되었다. 날 감싸던 이가 내 팔을 붙잡고 달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렸던 것 같다. 분명 거기까지는 희미하게나마 기억이 난다. 그 뒤로 어떻게 도적 홍길동 형님 곁으로 가게 된 건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곳은 어디였고, 형제인가 생각되는 형체 흐린 그 둘은 누구이며, 심지어 내 이름까지도! 무엇하나 확실하게 떠오르는 게 없어 답답할 따름이다. 지금의 이름은 날 아우로 삼아준 길동형님이 돌아가시기 전, 자신의 도깨비무공과 함께 물려준 것이다. 그 이해할 수 없는 유언과 함께...
가끔 그날 밤이 떠오를 때면, 내 왼쪽 팔이 덜덜덜 떨리다가 멈춘다.
“여기서 뭐해?”
앞마당 마루에서 멍하니 보름달을 보던 내게, 초희가 다가와 떨리는 내 왼팔을 지그시 잡아주었다.
“또 그때 그 생각해?”
초희의 물음에 난 고개만 끄덕였다.
“언젠간, 기억이 돌아올 거야, 그 사람들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고. 달님이 저렇게 굳건히 자리를 지켜주고 계시니까, 그렇지 않겠어? 음? 음?”
초희는 울상을 하고 있는 내 얼굴을 풀어주고자 했다. 보드라운 볼을 빵빵하게 하여 내 얼굴에 들이밀며 옆구리를 간지럽혔다.
“음? 음? 그렇소? 안 그렇소? 길동씨! 대답 좀 해보시지?”
“야아~ 그만해애~”
초희 덕에 이번에도 난 깔깔깔 크게 한번 웃으며 그 우울한 생각에서 벗어나올 수 있었다.
“아, 나도 알고 싶네! 울 서방님의 진짜 이름을 말이야! 분명 멋진 이름일 거야! 뭐, 지금이름도 좋긴 하지만!”
초희는 두 팔을 활짝 벌려 춤을 추듯 사뿐사뿐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과연, 그녀 말대로 그럴까?’
내 입가와 눈가엔 다시 씁쓸함이 묻어나오려 하고 있었나보다. 그 틈도 주지 않으려는 듯 초희는 내 귓불을 마구 잡아당겼다.
“또, 또, 거 쓰잘데기없는 걱정하신다. 또! 서방님 진짜 못쓰겠네? 그때 우리 집 매화나무아래에서부터 알아봤다니까! 밥이나 먹으러 가소!”
난 귀를 부여잡고 초희 뒤를 쫒으며 아프다고 투덜댔다. 그러나 좀 전의 씁쓸함은 이미 행복으로 바뀌어있었다. 내 입꼬리는 이미 귀 가까이 올라가 내려올 줄 몰랐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초희! 내 옆에 그녀가 없었다면 난 벌써 어둠에 침식당해 먼지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초희는, 나에겐 햇살과도 같은 그런 존재인 것이다.
*
그 봄날의 햇살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생생하다. 매화나무 밑에 쓰러져 있던 내 눈에 햇살이 들어왔었다. 그 햇살 속에서 작고 어여쁜 한 어린낭자가 수면위로 떠오르듯 찡그리고 있던 내 시야에 드러났다. 그 낭자의 얼굴은 봄날 오후의 햇살보다 눈부셨고 하얗고 하얗게 부드러워 보였다.
“이보시오, 괜찮소? 이봐요, 정신이 들어요?”
여긴 어디지? 아, 목소리가 곱구나, 난 천국에 온 게 아닐까?
영실대감의 실험이 실패로 끝나고, 난 천국에 온 게 분명해. 목소리에 어울릴만한, 예쁘장한 얼굴이 점점 다가왔다.
곱다, 고와!
난 좀처럼 얼이 빠진 상태를 벗어나기 힘들었다. 내 눈은 점차 풀려갔고, 내 입술을 담은 턱은 저 앞에 보이는 고운 얼굴 가까이 전진해갔다. 황홀감에 눈이 반쯤 감겼을 때였다.
번쩍!
번개가 쳤다.
영실 대감님이 날 데리러 천국까지 왔나? 아니 왜?
그것치곤 내 뺨이 너무 아팠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나는 걸 겨우 참았다.
“뭔 손이 그리 맵소!”
정신을 차린 난 축축한 두 눈을 하고선, 뺨을 두 손으로 부여잡고 울먹이며 따졌다. 햇살 속에서 떠오른 그 낭자가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어보이곤 말했다.
“헌데 그쪽은, 멀쩡하신 도령께서 무슨 연유로 남의 집 마당에 이렇게 넋을 놓고 누워 계신지요? 것도 벌건 대낮에!”
그 낭자는 인상을 팍 쓰며 말을 이었다. 주위에 알리기 전에 알아서 나가라며 팔을 멀리 담장을 향해 폈다. 그 목소리는 침착하고 단호한 목소리였다. 뭔가 근엄함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 목소리에 내 몸은 절로 뛰어가서 담을 넘었다.
‘내가 왜 순순히 따르고 있지?’ 라는 생각이 스치면서도 내 몸은 그 낭자의 명령에 너무도 순종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하지!
담벼락 너머로 가서도 몰래 낭자의 모습을 훔쳐보았다. 무언가에 끌리듯, 내 시선은 그 낭자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아 웃겨~ 뛰어가는 저 꼴을 보라지...”
그 낭자는 해맑게 웃음을 지어보이며 매화나무 곁에서 아직 떠나지 않았다.
“아씨! 초희아씨! 대감마님께서 찾으셔요, 이제 서둘러 들어가셔야 해요.”
그 낭자의 몸종이 애타게 부르며 쫒아왔다. 초희는 약간 두리번거리더니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름이 초희로구나! 얼굴처럼 이름에서도 꽃향기가 나는구나!’
그때도 내입꼬리는 절로 올라갔었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날 데리러 영실대감이 왔고, 나도 서둘러 발길을 돌렸었다. 그것이 초희와의 짧았던 첫 만남이었다. 그 뒤로 영실대감의 시간이동 실험이 성공한 덕에, 난 그곳을 몇 번이고 다시 갈 수 있었다. 균이라는 초희 남동생과도 알게 되어 내 모험담을 들려주기도 했다. 무척 즐거워해서 나도 이야기할 맛이 났었다. 그리고 초희의 남편이 될 사람 염탐 하는 등 많은 일들도 같이 했었다. 그 후로 초희는 시댁으로부터의 온갖 구박과 병마로 불행하고도 짧은 생을 살아야했다. 그 시대의 사람이 아닌 나는 그녀를 지켜주진 못했다. 그 삶이 마감되는 순간, 고맙게도 그녀는 나의 아내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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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은 허균이 저자이다.
허초희는 허난설헌, 허균의 누이이다.
짧은 인생을 살다간 허초희에게 아름다운 사랑에피소드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소설 속 배경은 세종시대라고 짧게 소설에 나오는 것을 기억한다.
웹소설창작을 배울때 대체역사? 판타지 섞인 역사에 관심이 있다보니 세종과 홍길동을 연결시켜보게 되었다.
별에서 온 그대에서도 주인공이 허균에세 영감을 주는 장면이 있었다. 그런식으로 소설을 쓸때 실제 역사적 인물을 엮어서 상황을 만들어보는것도 큰 재미라고 생각한다.
큰 틀에서의 소설적 상황은 장영실박사가 타임머신을 만들던 중 홍길동이 돕게 되는데 그러던중 사고가 일어나 시간이동을 하게 되어 허난설헌의 어린시절을 만난다는 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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