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암울했던 아득한 먼 미래에서 그들이 막 도착했다. 이번엔 숲이긴 한 것 같은데 주위에 바다가 보이고 섬인 듯 했다.
‘이 수정이 이곳으로 보내 준건가?’
영실은 가방에서 수정을 꺼내보며 생각했다. 그때였다. 수정은 금이 점점 심해졌고 이내 산산조각 나버렸다.
“안 돼!”
영실과 길동은 놀라서 누구먼저 할 것 없이 외쳤다. 그 조각난 파편들은 붉은빛을 뿜어대며 하늘 위로 솟구쳤다. 그 파편 무리는 흔들어진 벌통에서 출동한 벌떼들처럼 하늘위쪽으로 돌진해가다가 어느 순간 방향을 바꿔 바닷물 속으로 흩어지며 요란하게 돌진해 들어갔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길동아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 것이냐!”
둘은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고 잠잠해진 바다 쪽을 바라봤다. 고요함도 잠시, 곧 거센 바람이 불며 파도가 거칠어졌다.
“누가 나 현무의 잠을 깨운 것이냐!”
바람을 타고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간 있었던 일들과 미래에서 주작이 했던 말을 영실이 현무에게 전해주었다. 현무는 잠시 말이 없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현무는 대답했다.
“이곳에 조만간 큰 파도가 일어날 것 같구나!”
“큰 파도라니, 무슨 말씀이세요?”
길동이 되물었다. 현무는 말을 이어갔다.
“누군가 이 시대의 큰 혼란을 야기하고 있단 말이다! 너희가 이곳으로 온건, 나를 도와 이 시대를 평안케 하라는 뜻 같구나.”
현무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땅엔 동서남북으로 우리들의 거처인 섬들이 하나씩 존재한다. 이 땅의 사람들은 그들 자신은 모르지만 우리 사신들의 보호 속에 자리를 지켜오고 있지. 지금도, 그리고 너희들의 조선이란 시대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미래에서 만나고 왔지? 지금은 잠든 남쪽 제주도의 주작, 북쪽 끝자락 녹둔도의 나, 현무. 그리고 독도의 청룡과 강화도의 백호, 이렇게 넷이 사신으로 있다. 그 중에 내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역할을 맡아오고 있지. 동부여를 탈출하던 주몽이란 자도 있었고, 이방원 앞에서 군사훈련을 하던 때도 생각이 나는군. 이순신이란 자가 제일 인상이 깊어. 녹둔도에서 나를 발견했고, 그 힘을 빼앗으려한 여진족에게 힘을 빼앗기지 않으려 싸운 자이지. 왜가 쳐들어왔을 때도 나의 힘을 이용해 거북선을 만들어 싸웠고 말이야. 안타깝게도 그때의 조정은 나를 인정하지 않았지. 설상가상으로 이순신은 그자의 외골수인 성격 탓에 왕에게 미움까지 사버리게 된 거야. 결국 힘을 원균이란 자에게 빼앗겨 버렸지! 그자도 뛰어난 장수였지만 나의 힘을 쓸 줄 모르면서 무작정 전장에 끌고 나섰다가 전멸하게 되었지. 때문에 난 힘도 못 내보고 이곳, 칠천량에 잠들게 된 것이다! 지금 이 힘은 나의 일부뿐, 본래의 것은 녹둔도 어느 깊숙한 지하 동굴에 숨겨져 있다. 이순신이 만약을 대비해 힘 전부를 가져나오진 않고, 동굴을 봉인해 둔 덕분이다. 그런데 이곳엔 섬의 형태도 아니고 이 나라 국경 밖으로 되어있구나! 어쨌든, 이제 또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때가 온 것인가, 날 부활시킨걸 보면! 이곳 대통령이란 자가 어느 사악한 자에게 놀아나고 있구나! 이 사건을 계기로 이 시대 사람들의 분노로 이 땅이 망가지기 시작하는 듯 보인다. 이대로는 미래가 황폐해질 것이 뻔하다. 이미 누군가가 청룡, 백호의 힘에게 이끌리는 듯한데, 너희도 나와 주작의 힘을 움직여 주겠느냐?”
긴 이야기를 마친 현무는 간곡히 길동과 현무에게 부탁하는 어조로 말했다.
“대감님! 모른 척 할 수는 없잖아요! 저희가!”
길동은 예전 형님을 고문해 죽음으로 몰고 간 연산군이 생각났는지 눈을 바르르 떨며 말했다.
“전 그런 놈들 용서할 수 없어요!”
“그래, 그리고 그때 도망쳤다던 요괴 짓일지도 모르니 가보는 수밖에!”
영실대감도 현무와 길동의 제안에 동의했다.
현무의 이야기를 들은 영실과 길동은 현무와 같이 하기로 한다.
‘근데 주작님도 그랬지만, 현무님도 상당히 말씀이 많으시네. 사신은 다 그러신가?’
“이제 저희가 어떻게 하면 되죠?”
길동은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앞으로의 일을 물었다.
“우선 일부지만 이 힘을 부활시켜야겠다. 나의 몸, 거북선을 다시 복구시켜야겠어!”
바다는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점점 거세지는가 싶더니 이내 또 잔잔해졌다.
“왜란 때의 몸체는 흩어졌지만, 이곳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잠들어있는 잠든 영혼들이 아직 떠돌고 있구나! 그 수가 꽤 상당하군! 이제 그들의 한을 풀어주어야겠어! 너희들이 좀 도와주어야겠다!”
현무의 말이 끝나자, 수면의 파도들이 다시 거칠어졌다. 한 수정이 수면위로 떠올라 공중 위를 날았다. 방금 전 깨졌던 주작의 수정보다 커지고 울긋불긋 거칠어진 수정이 그들에게 날아왔다. 영실과 길동은 수정에 손을 대자 수정의 안에서부터 빛줄기들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밑으로 꺼진 빛줄기들은 땅속으로 흡수되는 빨려 들어갔다. 솟구친 빛줄기들은 하늘위로 뻗어가거나 방향을 틀어 바다 속으로 가는 것들도 여럿이었다. 그렇게 빛줄기는 사라졌고, 수정은 영실대감 손에 살포시 앉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무리 기다려도 영실과 길동 앞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뭐죠? 우리가 잘못 건드린 건 아닐까요?”
길동이 답답한지 물었다.
“기다려 보자꾸나!”
영실은 수정을 손에 조심스레 올려놓으며 대답했다. 둘은 바다를 한없이 바라보며 기다릴 뿐이었다. 곧 땅이 흔들리고 바다의 물결이 점점 거칠어져갔다.
“이거 지진이라도 난거 아녜요? 괜찮으세요, 대감님?”
흔들리는 땅 덕에 길동과 영실은 저만치 떨어지게 되었다. 그들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영문도 모른 채 바짝 엎드렸다. 곧 거친 파도가 일더니 거대한 쇳덩어리가 수면을 지나 하늘 위로 솟구쳐 올라왔다. 뿐만 아니라 나무며, 금속이며, 여러 재질의 많은 자잘한 조각들이 덩어리 주위로 떠올랐다. 그것들은 쇳덩어리 주위를 천천히 공전했다. 덩어리는 주위 조각들을 빨아들여 점점 몸집을 키워갔다. 계속해서 꿀렁꿀렁 울렁이더니 뭔가의 형태로 갖춰나가는 듯 했다.
“그만 일어나서, 그 수정을 이쪽으로 던져라!”
해풍을 타고 현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악!
“점점 무거워진다! 길동아, 이것 좀 받아 보거라!”
영실은 길동을 향해 소리쳤다. 영실에 말에 길동은 한번 바위에 한발을 디딘 후에 영실대감에게 다가와 수정을 건네받았다.
“참 내, 이딴 것이 뭐가 무겁다고, 대감님, 운동 좀 하셔야겠, 억,”
점점 무거워지는 수정에 길동은 당황했다.
“거봐라! 어른 말 좀 들어라! 더 무거워지기 전에 어서 던져!”
“아우, 알겠어요! 자, 갑니다~!”
길동은 수정을 두 손으로 꽉 쥔 채, 몸 전체를 몇 바퀴 돌렸다.
“어우 어지러워, 자 던집니다!”
수정은 길동의 손에서 발사되어 덩어리쪽으로 솟구쳤다.
쿵!
“녀석아! 너무 쎄게 던진 거 아니냐?”
“에이 몰라요. 시키는 대로 했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죠, 영감님!”
순간 영실과 길동 쪽으로 모래바람이 불어 닥쳐 그들의 눈을 감기게 했다.
으아아악!
그들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으려 잔뜩 수그려있는 동안, 덩어리는 계속해서 온전한 형태를 점점 갖춰나갔다. 한참 후에 드디어 바람이 멈춰, 그들은 몸을 다시 일으켜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곳엔 황금색 철갑선 하나가 완성되었다! 몸체는 단단한 등껍질에 뾰족뾰족한 것들이 솟구쳐있었고 뱀들의 형상들이 몸을 감싸고 있었다. 앞머리엔 용의 모습을 한 거북선의 형상이었다. 주위로는 자잘한 번개가 계속해서 쳐댔다.
크아아앙!
괴수의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고 뒤쪽에서 문이 열렸다. 그곳에서 황금색 빛줄기가 내려왔다.
“저기, 대감님, 저거 오줌줄기 아녜요? 설마하니 오줌 싸시는 건 아니겠죠?”
“그러게 말이다. 왠지 지린내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다소 지저분해보이는 모습에 지상의 길동과 영실은 적잖이 당황되었지만 내색은 못하고 소곤댈 뿐이었다. 그 줄기는 점점 구부러지더니 계단의 형태가 되었다. “둘이서 뭘 그리 소곤대는 것이냐? 광화문에서 큰 불이 번질 것 같구나, 일단 어서 가봐야겠다! 어서 올라 타거라!”
“예, 예~!”
현무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둘은 찝찝한 마음은 애써 숨기고 계단을 따라 배에 올라탔다. 문이 닫히고 배는 순식간에 광화문광장에 도착했다. 도착한 광장은 붉은 촛불로 바다를 이루었고, 곧 어디선가 목소리 하나가 울려 퍼졌다.
“들어라! 대한민국 민초들이여!”
그 다음 순간 갑작스런 번개가 일행의 거북선을 공격했다. 배는 그 번개에 맞아 밤하늘에 자그마한 불길을 한번 긋고 사라져버렸다.
콰광쾅쾅!
어느 무인도 하늘에도 번개가 쳤다. 번개는 모래사장에 내리꽂혔다. 그 순간, 용의 머리를 하고 몸은 거북모양을 한 황금색 배 하나가 모래를 가르며 나타났다. 길동과 영실이 타고 있는 현무의 거북선이었다. 이윽고 배는 어느 바위에 부딪혔다. 바위는 선체를 무자비하게도 찌그러트리며 배를 멈췄다. 용의 머리에선 포효소리가 크게 울렸고, 선체 여기저기에선 연기가 났다.
“이런, 예상치 못한 난기류를 만날 줄이야!”
배문이 열리고 그 곳에서 콜록거리며 나오는 영실이 말했다.
“그러게요. 갑자기 번개가 칠 줄은... 이제 어쩌죠. 대감님? 여긴 어딜까요?”
뒤따라 나오던 길동이 물었다.
“글쎄다. 현무님이 깨어나시기 전까지 이곳에서 잠시 머무를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을 것 같구나!”
영실은 막막함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광화문 위에 그 사람은 뭐였을까요? 공중에 떠 있던 것 같던데...”
“그러게 말이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원!”
둘이 고심을 해봐도 더 이상은 방법이 없었다. 현무가 다시 정신을 차리길 기다릴 뿐이었다.
밖으로 나온 둘은 일단 섬의 이곳저곳 먹을 만한 것들과 장작으로 쓸 만한 나무들을 찾아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길동은 망토와 검 한 자루를 발견했다.
“대감님 이것 좀 보세요! 이곳에 이런 게...”
영실도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대답 없이 어딘가를 응시하고만 있었다.
“뭘 그리 보세요?”
망토와 검을 주워 영실에게 다가온 길동도 같은 곳을 바라봤다. 그곳엔 붉게 빛나는 길쭉한 모양의 수정이 심장이 뛰듯 꿈틀거리며 모래에 박혀있었다.
‘뭐, 뭐지? 저 기분 나쁜 물건은?’
둘은 선뜻 그것에게 다가서지 못했다. 이러는 사이 이들은 눈치 채지 못했지만, 하늘 저 멀리에서 무언가가 그 섬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검고, 묵직한 무언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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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이순신을 보셨나요?
거북선으로 변신한 현무의 모습을 상상해봤어요.
뭔가 거북선에 현무의 힘이 깃들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현무의 모습을 보며 상상을 해봤거든요.
이순신도 이 현무의 힘으로 북쪽의 적들이나 남쪽의 왜와 싸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선 이순신이 죽고나서 현무의 힘이 바다에 잠겼고 그것을 현대에 온 장영실 홍길동이 되살리면 어떤모습일까?
하고 그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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