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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의 방

이야기조각 하나. 홍길동과 장영실을 만난 저승사자의 한탄!

by 꿈꾸는 검안사 2022.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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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조각 하나. 현무, 장영실 일행이 되다!

2016년. 암울했던 아득한 먼 미래에서 그들이 막 도착했다. 이번엔 숲이긴 한 것 같은데 주위에 바다가 보이고 섬인 듯 했다. ‘이 수정이 이곳으로 보내 준건가?’ 영실은 가방에서 수정을 꺼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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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이렇게까지 되다니! 심판자의 눈빛까진 좋았는데 폭주를 하다니! 게다가 지 멋대로 지옥의 괴수들까지 동원할 수 있을 줄이야!’

준서가 사라진 무인도로 저승사자가 준서 생각에 씁쓸한 표정으로 돌진해 갔다. 신생마왕이 출현했다는 소문으로 천당과 지옥 할 것 없이 모두 비상이 걸렸다. 화가 난 염라대왕은 저승사자에게 수습해야 할 책임을 떠안겼다. 수습 못하면 책임자를 소멸할 것이라 엄포를 놓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난 시키는 대로만 했는데 내가 왜?’

저승사자는 억울했다. 가뜩이나 현세에 들어 일이 많아졌던, 그래서 피곤에 절어 어두운 그의 낯빛은 더욱 흑 빛으로 변해만 갔다.

, 배고파! 내 배는 누가 책임져주나? 으 머리야, 이 갓 좀 집어던지고 싶다.’

저승사자는 그의 큰 머리를 쥐어짜며 달라붙은 작고 얄따란 갓 때문에 두통에 시달렸다. 살찐 그의 머리통 때문인지, 전엔 널찍했던 갓은 이제는 머리 밖으로 빠져나올 엄두도 못내는 듯 했다.

 

잠시 뒤 저승사자는 무인도 해변에 박히듯 착지했다.

!

어찌나 세게 박히던지, 주변의 강력한 모래바람을 일으켜댔다. 착지한 그는 모래사장에 박힌 붉은 수정을 집어 들며 한숨을 쉬었다.

한발 늦었구나!’

그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노인과 젊은 무사로 보이는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그대들은 누구신가?”

저승사자는 물었다.

우리는 사정이 있어 같이 싸울 동료들을 모으기 위해 조선시대에서 왔소! 전 장영실이고 이쪽 청년은 홍길동이라 하오! 불구덩이가 된 광화문 일대를 날다가 번개인지 난기류에 휩쓸려 이곳에 오게 되었지요!”

세 명은 각자의 사정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된 거 서로 도움을 주기로 한다.

자네들은 이도가 보낸 자들이었군! 자네가 홍길동인가? 잘되었어. 혹시 나중에 손오공을 만난다면 그가 금고아를 뺏는지 물어봐줄 수 있는가? 뺏다면 그 방법 좀 물어봐 주시게나. 보다시피 나도 비슷한 문제로 골치가 아파서 말이야!”

, 근데 저 혹시, 그건 다른 문제 아닐까요? 살을 먼저...”

갑작스러운 질문에 길동은 난색을 표했다.

일단 보자, 현무님을 어서 깨워야겠군!”

저승사자는 민망한지 헛기침을 하며 무심한척 배 앞으로 갔다. 회복주문을 외우며 팔을 뻗었다. 잠시 뒤 선채의 상처와 구멍들은 사라지고 원래의 모양으로 복원되었다. 현무의 포효소리가 들려왔고, 다시 깨어났다.

너희들은 괜찮은 것이냐?”

현무는 영실과 길동에게 물었다. 영실은 방금 전 들은 얘기들을 간략하게 현무에게 전했다.

오랜만입니다. 현무님! 선체가 아주 멋져지셨군요!”

저승사자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여러 일이 있었지, 얘기하자면 길 것이야. 그런데, 정말 내가 알던 자네인가? 그동안 고생이 얼마나 심했기에, 자네 행색이 참으로... 갓은 뭘 그리 꽉 조였는가?”

현무는 앞에 서있는 저승사자의 예전 꽃미남이라 불리던 시절을 생각하며 잠시 탄식했다. 더부룩한 수염과 빵빵한 배에 묻혔는지, 예전 날카로운 턱선과 사늘한 눈빛의 호리호리한 모습은 온데 간 데 없었기에.

어찌되었건 현무님, 지금은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준서라는 자가 결국 마지막은 청와대로 향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통령도 준서의 눈엔 갑질러 중의 갑일 테니까요!”

저승사자는 현무에게 재촉했다.

그래, 자세한 이야기는 가면서 듣도록 하지

문이 열리고 셋은 거북선에 올라탔다. 거북선은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둥글게 항해하는가 싶더니 번개를 일으키며 사라졌다.

 

거북선은 순식간에 광화문 광장 앞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 배는 좀 특별했다. 한민족을 수호하는 사신 중 하나인 현무가 깃들어있는 만큼 신비한 능력들이 많았다. 그 중에 지금 발휘된 능력은 선체 내의 시간을 잠시 분리해 멈추는 것! 거북선은 순식간에 도착했지만 일행들은 아직 그 사이의 시간에 머물렀다. 갑작스레 만난 저승사자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다. 잠시지만 이야기를 듣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밀크셰이크다!”

길동의 입에서 배안의 창문에 보이는 바깥풍경을 보고 한마디 단어가 내뱉어졌다. 창문 아래의 풍경을 보고 이 단어가 튀어나온 자신이 얼떨떨했다.

생소해야하지만 어딘가 익숙한, 그립지만 뜻 모를 이 단어, 내 입으로 튀어나온 이 단어는 무어란 말인가?’

밀크셰이크~ 밀크셰이크~ 밀크, 밀크, 밀크셰이크~ 내가 좋아하는 밀크셰이크~나만 먹을꼬지롱? 누구도 안줄꺼에욤~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서 자신이 어느 가정 한 가운데에서 밀크셰이크를 흥얼거리며 장난치던 한 장면이 스쳐지나갔다. 꿈처럼 그것도 역시나 안개 낀 장면이었다. 어쨌든, 거북선에서 내려다보는 밖은 시간격차 덕에 하늘의 구름과 바다 땅 이런 것들이 뒤틀리고 서로가 뒤섞여가는 모습이었다. 마치 거대한 밀크셰이크라도 만드는 마냥! 길동이 이렇게 무언가를 떠올리고 있을 무렵, 현무와 영실은 저승사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 수정은 준서 그자가 폭주 전에 마지막으로 흘린 양심의 눈물 같은 것이겠군!”

현무가 말했다.

, 현무님, 그렇습니다. 이 수정을 그의 심장에 다시 꽂기만 하면 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저승사자가 대답했다.

그 자는 어떤 자였습니까?”

바깥구경을 마친 길동이 다가와서 물었다.

이제 그 자에 대해서 말을 해 보게나! 그래야 어떤 행보를 보일지 추측할 수 있을 테니!”

현무는 길동의 말에 거들어 물었다.

! 그리하지요. 그 자를 보게 된 건 지옥의 염라대왕님께서 보이콧 선언을 하시고 난 직후의 일이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이 행성 곳곳에 전체적으로 대대적인 전쟁을 겪으며 예전 군주왕정시대보다 복잡한 세상이 되었지요! 자유라는 명목 하에 전엔 상상도 하지 못할 풍요로움이 생겨났죠. 개개인의 사랑, 배려 이런 좋은 쪽은 물론이고, 시기, 질투, 욕망 같은 악함들도 늘어났습니다. 억눌렸던 판도라의 상자가 이 나라에서도 열린 셈이죠. 양적인 팽창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점점 주체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갔지요. 설상가상으로 자신이 믿고 따르는 절대자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같은 절대왕정시대의 잔재들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아 혼란은 더 가중된 상황이지요. 그 덕에 여유롭던 지옥행담당 저승사자들은 백년 사이에 예방관리라는 과중한 업무를 떠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덕분에 전에 없던 능력들도 받았지만, 힘든 건, 말도 마십시요!”

에휴~

저승사자는 한숨을 한번 내쉬었다.

자네의 그 행색차림도 이해가 가는군!”

현무는 말했다. 저승사자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그렇다. 저승사자는 고생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꽃미남에서 아재가 될 정도로! 우리 주변의 배불뚝이 아재들도 예전엔 꽃미남이 아니었을까? 아재스럽다, 한심하다 욕만 할 것이 아니다. 한번만이라도 야근에 회식에, 사회생활에 시달리는 그들을 안쓰럽게 쳐다봐주자!

 

다시 저승사자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저승사자가 말한 대로 지옥의 일이 너무 많아진 것이다. 심지어 지금 지옥의 염라대왕이 보이콧 선언을 해버린 상황이다. 한가한 천당의 옥황상제가 편하게 보여서 심통이 난건지, 저승사자에게 공문을 보내왔다.

[지옥으로부터 전언-지옥의 인원이 꽉 차버렸습니다. 더 이상 받을 구멍이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니 당분간 정말 처리가 안 되는 존재가 아닌 이상 받지 않겠습니다. 정화의 검을 첨부해 드릴 테니, 적절한 인간에게 맡겨 개 쓰레기 같은 존재들이 늘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도록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인간의 인생영상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업그레이드 시켜드립니다. 메시지를 읽은 후 신청버튼을 눌러주십시오!]

더 피곤하게 생겼군!’

저승사자는 신청버튼을 누르며 예전이 좋았단 생각에 절로 한숨이 났다. 그리곤 그 검을 맡길 인간을 찾아다녔다. 얼마 후, 저승사자는 무법자처럼 도심 도로를 휘젓는 버스를 발견했다.

저건 뭐지?’

저승사자의 관심은 버스 쪽으로 갔다. 더 정확히는 버스기사에게로 흥미가 갔다.

저놈으로 할까?’

 

[속보입니다.]

저승사자가 지켜보고 있는 버스 안에는 라디오 방송이 나왔다.

[탈옥범 민은국을 공개 수배합니다. 실로 국민 가슴에 또 커다란 구멍을 내는 사건이라 하겠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고 수감 중이던 민은국이 탈옥을 하여 도주 중입니다.]

승객들은 방송을 들을 여유 없이 몸을 휘청대며 소리를 질러댔다. 반면에, 버스기사는 이어폰을 끼며 음악에 따라 어깨를 들썩이며 입도 흥얼흥얼거렸다. 그 기사는 엑셀만을 신이 나서 밟아댔다.

[수차례 청문회 출석요구에 거절을 해오던 민씨는 결국 구치소에 큰 구멍을 내고 도주하였습니다. 이는 미리 계획된 것으로 보이며 관련 인사들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 일관하고 있습니다. 시민단체에선 일부러 풀어준 것이 아니냔 의혹을 제기하고 항의 촛불시위를 확대해 나가겠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얼마가 지났을까?

어둑어둑한 방.

저승사자와 굵은 나무줄기에 손발이 묶여있는 한 인간이 기절해 있었다.

버스기사였다.

[~! ! ~! ! ... “도망가! 둘이 먼저, 어서!”...]

이건 혹시 이도가 말한 그 형제들인가? 혹시 모르니 따로 챙겨둬야겠군!’

아그작, 아그작, 쩝쩝. 쩝쩝...

저승사자는 한손에 든 과자봉지 속 내용물을 계속해서 입안으로 옮겨가며 영상하나를 보았다. 부스럭 소리에 인간이 정신을 차린 듯 했다. 저승사자는 영상을 주머니에 꾸겨 넣으며 인간에게 말을 걸었다.

일어났나, 강준서? 빨리도 일어났네.”

급하게 손가락의 과자 부스러기도 털어냈다. 인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저승사자를 보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누구세요? 어떻게 내 이름을? 여긴 어디에요? 분명 운동장이었는데, 어떻게 된 거지? 당신이 날 데려온 거요? 이 나무줄기는 또 뭐야? 근데 내가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되는 거죠? 벌을 받는 건가요? 당신은 누군데요? 이봐요, 대답을 좀 해봐요!”

끊지 않으면 멈추지 않을 기세였다.

말 좀 그만해! 그만!”

저승사자는 짜증을 냈다.

말 엄청 많네~ 난 말 많은 놈 딱 질색인데... 수다가 거의 이도만큼이구만?”

저승사자는 진정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넌 사람들을 엄청 죽였더군! 희생자들은 다행히 지옥행 영혼들은 없었지만, 어쨌든 넌 큰 죄를 지어버렸어~! 너의 머릿속을 잠시 들여다 볼 것이다. 위에 보고해야하니!”

저승사자는 손을 인간의 머리 쪽으로 얹으려 팔을 뻗었다.

뭐야, 왜이래, 누군데 그래요? 뭐하려고요?”

인간이 겁을 먹은 듯 물었다.

내가 얘기 안했나? 난 저승사자. 한국지부 지옥행 담당이지. 그러나 걱정 안 해도 되! 당장 지옥으로는 안 보낼 거다! 그곳은 지금 인원초과라서 말이야. 널 보낼 자리도 없어. 어쨌든 지금은 염라대왕께선 아주 피곤해하시고 격노하셨지.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고 보고부터 할 영상이나 봐야겠다.”

저승사자가 팔을 마저 뻗어 인간의 머리 위에 얹으니 바닷물 속에서 그물에 낚여 올라오는 멸치 떼처럼 영상들이 꾸러미 채 건져 올라왔다. 인간은 정신을 잃지 않고 신기해 할 뿐이었다.

이게 뭐지? 이런 게 가능해?”

인간이 놀라 물었고 저승사자는 대답해주었다.

저승사자만의 능력이지! 정신을 잃고 잠들 줄 알았는데 꽤나 강한 정신력을 가졌나보구나! 어쨌든 훑어보겠노라~!”

공중에 떠있는 영상물 꾸러미를 양 손으로 쫙 펼쳐서 훑어보았다.

 

저승사자는 아까 잡아오기 직전의 상황으로 보이는 영상을 찾아냈다. 손가락을 한번 가져다 누르니 영상이 재생되었다.

[나는 버스운전기사다. 어느 화창한 봄날, 정류장에 버스를 멈췄을...]

, 이건 뭐야? 내가 주인공인 영화 같잖아~! 내레이션까지 내 목소리잖아!”

인간은 두 눈을 동그랗게 크게 뜨며 공중에 떠있는 그것들을 쳐다보았다. 자신의 것들인 것이 실감이 안 되는 눈치였다.

놀랐나? 너희 인간의 뇌는 너희들이 하는 행동하나하나를 자서전영상으로 만들어 놓고 있지~ 너희 인간들이 쓰는 컴퓨터의 백업을 하는 셈이야! 이 영상들은 그 복사본이라 할 수 있어! 이왕 이렇게 된 거, 같이 보자고!”

영상은 한쪽 벽을 스크린삼아 플레이되었다. 말 그대로 한편의 단편영화였다.

 

나는 버스운전기사다. 어느 화창한 봄날, 정류장에 버스를 멈췄을 때였다. 작은 투명 창 사이로 내 자리로 주먹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왜 이러세요! 아 진짜! 하지마세요.”

주먹이 내 얼굴을 향해 계속해서 돌진해 왔다. 주먹이 몇 번 오고 간 자리엔, 이번엔 재빠른 발이 송곳이 되어 내 몸을 날카롭게 찌르려 돌진해 왔다. 내 몸은 잔뜩 움츠려들었다. 내 팔은 몇 분 동안 쉴 틈 없이 위아래를 오갔지만 내 얼굴과 몸은 뻘겋게 퍼렇게 점점 썩어갔다.

내가 무슨 잘못이라고. 왜 자꾸 나에게만...’

정말 울고 싶었다. 어릴 때 헤어져 흩어진 동생들도 생각이 났다.

애들은 잘 살고 있을까?’

사내는 뭔가에 열이 받아 있는 듯 했고, 마치 피니쉬 기술을 쓰기전의 흥분 가득한 프로레슬링선수처럼 시끄럽게 포효했다.

여기 좀 도와주세요! 이 사람 좀 말려주세요!”

소리치며 도움을 청했지만 직육면체 공간 속의 사람들이 다가오는 소리를 좀처럼 듣지 못했다. 날카로운 발놀림에 고개가 저절로 돌려져 플라스틱 막 밖의 사람들의 공간을 보게 되었다. 순간 그곳은 무섭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온한 세계처럼 보였다. 그냥 이 상황이 빨리 끝나서 다시 출발하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사람 몇몇의 눈빛은 이런 신호를 보내왔다.

쳐다보면 뭐하게?’

결국 버스는 다음 장소로 출발하지 못했다.

 

이 시점부터 다소 지루해졌다. 저승사자는 영상 쪽으로 팔을 뻗었다. 복수를 시작했던 오늘 그 시각까지의 영상까지 돌려버렸다. 빨리 감기가 되는 영상들만 봐도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때린 놈뿐만이 아니라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사람들까지 복수의 대상으로 두었던 듯 보였다. 재취업 실패와 정신적 이상에 아내와 아이마저 이놈을 떠난 듯 했다. 저승사자는 인간에게 연민을 느꼈다.

불쌍한 인간! 어찌 이리 되었단 말인가? 이놈은 모든 걸 잃고 술에 절어 살다가 우연히 마주친 그 가해자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눈이 뒤집힌 것이었다. 저럴 수 있지!’

저승사자는 복수의 시작점까지 돌렸다. 팔을 내리자 영상은 다시 재생되었다.

 

놈이 드디어 내 앞에 나타났다. 전에 몰던 37번에서 55번으로 바꾼 지 열흘 만이었다. 놈이 나타났다는 사실에 흥분되기 시작했다. 놈은 아이와 아내가 함께였다.

세 명이요!”

[다인승입니다.]

그놈은 날 알아보지 못하고 카드를 찍고 지나갔다. 내 자리는 철로 만든 쉽게 범접할 수 없을 막으로 채워져 날 방해할 요소는 사라졌다. 놈을 포함해 승객들은 일반적인 것보다 오바스러운 내 운전석을 그리 신경쓰진 않는 눈치였다. 역시 저 승객이란 놈들은 지들일 아니면 무신경한 놈들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못 참을 정도로 덥거나 춥지 않은 이상 신경쓰지 않는 창문들도 뻑뻑하게, 쉽게 안 열리는 상태였다. 버스를 이제 정류장에 세우지 않았다. 난 이어폰을 끼고 어릴 때 봤던 tv만화 영광의 레이서 오프닝 송을 반복재생으로 해놓고 따라 불렀다. 액셀은 있는 힘껏 밟으며 레이스를 즐겼다. 사람들은 기겁을 하며 나에게 둘러싸인 철문을 힘껏 두들기며 나에게 멈추라 소리쳤다. 참으로 적극적인 모습들이었다. 예전과 다르게...

! 이거 완전 부산행 좀비들이 따로 없구만!’

...내 마음 뭉게구름 솜사탕같아~!...

어깨를 들썩이며 귓가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내 입고리가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더욱 힘차게 액셀을 밟았다. 버스를 이러저리 요동치며 몰아보니, 이미 버스는 슈퍼유니콘으로 변신해 달려 나를 더욱 더 흥분케 했다.

부스터~! 최고점까지 카운트다운 시작! 가자, 슈퍼유니콘~!”

난 생각나는 대로 아무 말이나 외쳐대며 액셀을 밟아댔다. 한참을 달리다가 눈에 보이는 학교 운동장으로 버스를 몰아갔다. 차를 멈춰 세우고 뒤를 돌아보니 사람들은 거의 실신상태로 쓰러져 있었다. 마침 가까이에 엎어져있는 그놈을 발견했다. 그놈만 끌고 나와 던져놓고, 전에 설치했던 가스의 밸브를 열어놓고 버스 문을 잠갔다. 얼마 되지 않아 창문은 뿌옇게 변해갔다.

 

정신을 차린 그놈이 울먹이며 외쳐댔었다.

, 왜 그러세요. 저희한테.”

이제 와서 약한 척 하는 꼴이란! 난 웃으며 말했다.

, 그냥 열 받잖아!”

라이터 하나를 꺼내 놈의 아내와 딸이 타고 있는, 여태까지 내가 몰던 버스 밑으로 던졌다.

안 돼!”

그놈은 소리쳤지만 이미 버스는 폭발음과 함께 검은 그을음이 되어갔다. 폭발음과 함께 사람들의 짧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잘 짜인 오케스트라합창단의 합창 같았다.

아름답구만!”

난 입맛을 한번 다셨다. 그놈은 정신없이 울어재끼며 비명을 외쳐댔고, 난 악마를 소탕한 용사마냥 보람된 웃음도 지어보였다.

이 새꺄~, 이 악마새끼, 너 뭐하는 짓이야 이게~! 이게 뭐야! 저 사람들 살려내, 살려내라고!”

그 놈이 내 멱살을 잡으며 날 죽일 듯이 달려들었다. 그토록 내가 바라던 이 남자의 반응이었다. 놈의 손은 떨리고 있었고 전혀 위협적이지 못했다. 전과 달리...

그러게, 왜 가만히 있는 날 건드렸어? 버스기사라고 내가 만만했니? 만만하면 니 열 받는 거, 막 화풀이해도 된다든? 네가 아무 상관없는 날 밟은 덕에, 난 직장도 잃고 가족도 다 잃었거든! 사람하나 그렇게 만들었으면 너도 같이 추락해야 이치에 맞는 거잖아 그치? 난 이치에 맞게 널 심판했을 뿐이야! 안 그래? 그러니까 저 사람들, 그리고 네 가족이 죽은 것도, 다 너 때문이에요, !”

힘없이 쓰러지는 그놈을 패대기치고 난 유유히 밖으로 걸어갔다.

흐음, 별거 아니네! 새끼! 난 깜방에나 들어가서 푹 좀 쉬어야겠다. 졸립네...’

놈을 스윽 한번 쳐다보고는 곧 나를 데리러 올 시끄러운 불빛의 경찰차 행렬을 기다리면서 나는 지루한 하품을 길게 뽑아냈다.

 

저승사자도 하품을 하며 리모컨으로 tv를 끄듯 팔을 뻗어 영상들을 정지시켰다.

볼만 했네~”

너무 단순한 구조라고, 또 복수 준비과정이 너무 과했다고 말했다. 저승사자는 마치 영화평론을 하듯이 중얼거리며 상부에 보고할 준비를 시작했다.

뭐 영화라도 한편 보셨어?”

인간은 저승사자의 태도가 불쾌했다.

그래, 너도 이 일 오래 해봐~ 평론가 다 된다니까? , 니들 말로하면 인생평론가랄까?”

저승사자는 웃으며 그 영상을 상부에 전송시켰다. 나머지 영상꾸러미는 작은 조각들이 나뉘어가며 사라져버렸다.

이제 곧, 명령이 올 거다. 너에 대한 처분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언 메시지가 떴다.

[담당 저승사자의 제량에 맡기겠습니다. 어느 쪽이든 확실히 처리요망!]

“... 이란다!”

놈에게 메시지를 읽어주었다.

, 처리? 난 죽는 건가요?”

인간이 목소리를 떨며 물었다. 저승사자는 한심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놈이, 그런 큰 죄를 지어놓고 멀쩡하길 바라는 건가?’

저승사자는 인간이 듣고 싶을 대답은 하지 않았다.

 

딱딱한 말투로 이어나갔다.

세계는 부당한 갑들이 만연해 있어 선한 영혼들까지도 악함으로 물들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 나라도 이미 심각한 수준이지! 은밀하게 사회전반에서 말이야! 네가 복수를 했던 그 사내도 아마 희생자였을 가능성이 크다. 너처럼! 악에 바친 니들 놈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꼴이지. 복수를 원한다면 본질적인 놈들을 상대로 해야 하지 않겠나?”

인간은 부들부들 떨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에겐 선택지 하나를 주겠다.”

저승사자는 검 두 자루를 꺼내들며 말했다.

자 선택하라! 하나는 이 검! 소멸의 검으로 소멸 당할지 아니면 이 검! 정화의 검으로 갑들을 정화시켜 나갈지!”

인간은 저승사자의 제안을 듣자,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입술을 꽉 깨물며, 한동안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찌나 꽉 깨물었는지 오도도독 기분 나쁜 소리가 날 정도였다. 그의 몸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이윽고 고개를 들었다.

한번 해볼게요, 제가 잘할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그리고 한 가지 부탁드릴게 있는데요.”

인간은 처음의 그 수다스러움은 온데 간 데 없고 무거운 짐을 어깨에 하나 더 얹은 짐꾼마냥 한층 가라앉아 보였다. 순간적으로 붉은 눈이 번쩍했다가 사라졌다. 저승사자는 그것을 보진 못한 채 말을 이었다.

일이 성공한다 해도 너의 처분은 아직 결정된 것이 아니다. 이 소멸의 검을 쓸지, 아니면 어떻게 할지 그때 가서 결정을 할 것이다!”

저승사자는 인간을 노려봤다.

하늘 위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행운을 비마, 이것들을 가지고 열심히 해 보거라! 네가 말한 건 이번 한번만 들어주마!”

그는 말하며 준서에게 여러 가지를 건네주었다. 그것들은 저승사자에 버금 갈 여러 능력들이 있고, 날 수도 있는 투명망토와 정화의 검이었다. 그리고는 빛을 발산시키며 하늘 위로 올라갔다.

다시 말하지만, 넌 이미 크나큰 죄를 지은 죄인이다! 조금이라도 속죄를 할 수 있는 길을 걷도록!”

 

저승사자는 영상 속, 남자모습을 떠올렸다.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환하게 웃는 모습. 놈이었다. 날 이렇게 만들고 웃음이 나오나보다. 놈은 아이와 손을 꼭 잡고 예전에 내가 몰던 37번 버스를 탔다. 그 모습을 난 멀찌감치 서서 가만히 옅은 미소로 바라만 볼 뿐...]

섬뜩했다. 인간의 얼굴에서 심판자의 눈빛을 보았기에.

이도가 찾던 삼형제 중 한명일 수도 있겠군. 그런데 그것치곤, 너무 포악하지 않은가? 그래도 뭐 그런 부탁을 하는 것 보니 괜찮겠지...’

저승사자는 내심 안심하며 올라갔다.

 

인간은 눈부심에 눈을 감았다 떴다. 결박은 풀렸고 그 운동장으로 돌아왔다. 버스는 그을음이 되기 전, 기절한 승객들을 태운 채 멀쩡해있었다. 그 앞에서 놈은 울부짖는 상태 그대로였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놈의 옷은 버스기사 옷이 입혀져 있었다. 시내를 폭주한 버스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도착한 경찰들은 허둥지둥 뒷북을 치기 시작했다. 물론 범인은 그 자리에 있지만 투명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자리를 뜬 것과 다름없었다. 그것도 모자라 버스 옆에서 쓰러져 흐느끼는 남자를 범인으로 오해해 그를 포박했다.

내가 아니야! 내가 아니라고! 미진이랑, 내 딸도 저기 있다니까! 내 딸~! 그놈이 저 사람들 죽였다고! 내가 아니라고!”

죽긴 누가 죽어? 인마! 이놈 이거, 대낮부터 술 처먹었나? 헛소리나 찍찍하네...”

경찰은 그를 포박한 채 끌고 가 경찰차에 태웠다.

내가 안 그랬어! 그놈이 불 싸질렀다고!”

, 대체 불은 누가 질렀다고 그래? 조용히 해 새꺄!”

남자의 눈엔 아직도 운동장의 버스는 불타오르고 있었다. 남자는 울부짖었지만 경찰들은 그의 말 같은 건 듣지 않고 제압할 뿐이었다.

딴사람은 몰라도 넌, 그 지옥에서 당분간 절망을 좀 맛봐야 되!’

준서는 멀리서 가만히 그를 쳐다보았다. 뒤이어 출동한 구조대 차들이 요란스럽게 도착했고, 버스안의 갇힌 승객들을 차례차례 구조했다. 버스 안 기절했던 승객들이 기침을 하며 나오는 모습을 본 준서는 한숨을 내쉬며 사라졌다.

일단 이걸로 된 거겠지... , 세상 시끄럽게 하는 놈들부터 혼내주러 가볼까?’

인간은 청문회장으로 날아갔고, 곧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런 한심한 개, 돼지만도 못한, 버러지 놈들!...”

 

어서, 녀석을 진정시켜야겠군!”

현무는 말했다.

말씀대로 저희 전하께서 말씀하신 삼형제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군요. 혹시 그게 아니어도 잘만 다듬으면 훌륭한 인재가 될 수도 있으니, 꼭 데려가야겠소!”

영실도 말했다.

대감님, 도술도 가르쳐야겠어요, 정신을 수양해 다시는 폭주하는 일 없도록!”

길동도 거들었다.

, 자네처럼 말인가? 자네부터 꾸준히 하게나. 그때 고주망태와 함께 난동피던 걸 생각하면 어휴, 그때 전하와 구미호가 없었으면 어찌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싫네 그려.”

길동의 말에 영실은 장난 섞인 어투로 길동에게 손사래를 쳤다.

대감님도 참, 예전일은 왜 또 꺼내시고 그러세요.”

길동은 멋쩍었는지 머리를 긁적였다. 이제 시간의 멈춤은 풀려 밀크셰이크는 흩어지고, 일행은 청와대를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준서는 과연 청와대로 향했을까? 일단 거북선의 뱃머리는 그곳을 향해서 전진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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